문명에서 야만으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아이들이 무인도에 표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단순한 생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덮을수록 이건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작품임을 깨달았다. 문명이라는 얇은 껍질 아래 숨겨진 야만성을 탐구하는 이 소설은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규칙의 붕괴
소설은 비행기 추락 후 무인도에 떨어진 아이들이 규칙을 만들며 문명을 세우려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랠프는 민주적 리더로, 피기는 지혜를 상징한다. 하지만 곧 잭과 사냥꾼들이 등장하며 규칙은 무너진다. 특히 소라를 불며 모임을 소집하던 장면에서 질서가 유지되던 순간이 점차 혼란으로 변하는 과정은 섬뜩했다. 이는 인간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얼마나 쉽게 야만으로 돌아가는지 보여준다.
내 안의 잭
잭의 폭력적인 변화를 읽으며 나는 내 안의 어두운 면을 돌아보았다. 고등학교 때 단체 프로젝트에서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나는 조용히 화를 삭이는 대신 소리를 지르며 내 뜻을 관철하려 했던 적이 있다. 그 순간의 나는 피기를 억압하며 힘을 과시한 잭과 다르지 않았다. 파리대왕은 나에게 숨기고 싶었던 본성을 마주하게 했다.
공포가 낳은 괴물
아이들은 섬에서 ‘괴수’를 두려워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진짜 괴물은 외부가 아니라 그들 내면에 있었다. 파리대왕, 즉 돼지 머리는 인간의 잔혹함을 상징한다. 이를 현실에 대입하면, SNS에서 익명으로 사람을 비난하며 쾌감을 느끼는 이들을 떠올렸다. 나도 한 번은 온라인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비웃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섬에서 피기를 조롱하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문명의 얇은 경계
소설 속 아이들은 문명에서 멀어질수록 잔인해진다. 피기의 죽음과 랠프를 사냥하려는 장면은 인간성이 완전히 무너진 순간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재난 상황에서 물자를 놓고 다투는 사람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본 적 있다. 평소엔 점잖던 이들이 위기 속에서 이기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파리대왕의 섬을 떠올리게 했다.
깨달음과 반성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깊이 고민했다. 우리는 문명 속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그 이면엔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야만이 잠재해 있다. 직장에서 동료와 경쟁하며 은근히 질투했던 순간을 반성했다. 파리대왕은 나에게 타인을 향한 분노를 다스리고, 공감하는 법을 되새기게 했다.
2025년의 경고
2025년의 지금, 파리대왕은 여전히 강렬한 경고를 던진다. 디지털 세상에서 익명성이 폭력을 부추기고, 갈등이 쉽게 증폭되는 현실은 소설 속 섬과 닮았다. 이 책은 단순한 독서감상문을 넘어 인간 본성을 성찰하게 하며,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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